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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점프 : 황경현> 드로잉룸

전시명
<퀀텀점프 : 황경현> 드로잉룸
전시장소
경기도미술관 1층 프로젝트갤러리
전시일정
1월 17일(화)~2월 12일(일)
오프닝리셉션
2017.01.17(화) 오후4시
대상 – Stroller(역마:驛馬)
‘Stroll’이라는 단어는 인상주의 때 처음 미술사 용어로 등장한다. 19세기를 거니는 산책자(Flàneur)였던 보들레르의 ‘Stroll’은 ‘목적 없는 보행’에 가깝다. 이 ‘거님’에서 발견되는 풍경들은 그저 우리에게 눈이 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다. 이러한 ‘거님’은 자본주의가 안착하면서 ‘여가’나 ‘목적 없는 보행’을 할 여력이 생긴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발생한다. 흑백 그림의 대상들은 작가가 ‘비판적 산책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21세기 극초반의 도시 풍경들이다. 사물인터넷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초고속 문명사회는 ‘목적 없는 보행자’가 아닌 ‘타의적 유목민’만이 도시를 이루어 낸다. 삑-삑 거리며 유랑하는 익명의 데이터.
평면회화(1) – 흑백 그림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면 문명사회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 도시를 이루는 불빛 아래서 군중들은 ‘생존’과 ‘이상’을 오가며 꿈을 꾼다.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한 흑백의 공간, 정착할 수 없는 물렁한 건축물들, 인공의 빛에 취해 이끌리는 군중들. 흑백 그림은 군중들이 오가는 도시의 풍경을 몽환적으로 연출하는 자각몽의 공간(Phase)이다.
평면회화(2) – 다차원의 공간
‘그림을 그리는 일’은 때때로 예술과 무관해 보인다. 무수한 다차원의 공간을 어떻게 얇은 막에 끼워 넣을까? 현실세계를 0-1의 세계로 대체해 나가는 사물인터넷의 존재감을 인지하고 나서는 이 세계가 홀로그램 같기도 하다. 가상공간에 과거와 현재를 뒤죽박죽 옮겨놓은 괴상망측함. 얇은 막의 공간은 현실의 파편에서 소환된 자본주의 사회구조 이면의 군중들과, 그들이 사는 세계를 연출해낸다. 만약 얇은 막 조차 필요치 않는 ‘가상’이 현실이 될 때, ‘그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림’은 더 이상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드로잉 룸
무엇을 어떻게 구현하였든, 또 그것이 어떤 그림이 되었든 보는 방법이 일관적이라면, 그것 또한 예술적 사고방식에 어긋나지 않나 싶다. 형식적 탐미주의 접근법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는 가장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보는 방법’에 대한 자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벽에 걸린 채 일자로 마주해야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그림’ 특히 나의 ‘흑백 그림’처럼 대상이 구체적으로 구분되어 읽어야 하는 ‘그림’은 어떻게 보여야 할까? 바닥으로부터 출발하여 벽으로 이어져 밟으면서 보는 (ㄴ)자 그림, 스크린 기법을 사용한 곡면 형태의 그림, 종이 양 끝을 말아 화면의 확장을 암시하는 족자 그림의 구조는 작업의 내부적 이야기뿐 아니라, 보이는 방식에 대한 시도이기도 했다.
‘드로잉 룸’은 이러한 고민들로 이루어진 드로잉이 연출해내는 공간이다.
흑백 그림의 기법은 콩테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검은 입자들을 종이에 고착시키고, 빛의 흔적을 쫓아서 빙글빙글 돌리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노작 형태의 회전은 경계를 모호하게 이어줌으로써 흑백 그림을 재현함과 동시에 반대로 종이 표면을 긁어내며 대미지를 축적시킨다. 얇은 막에 반복적으로 ‘그리는 일’은 내적 사유를 통해 그 지점이 ‘긁는다’로 변한다. 0-1의 세계 사이, 즉 얇은 종이 한 표면에서부터 좀 더 안쪽 세계로 접근하기도 하고, 바깥으로 나오기도 하며, 구현된 세계의 안과 밖의 경계를 오간다. 이러한 행위가 때때로 종이에 쏘아진 실체 없는 홀로그램에 물리적 구멍을 생성하는 일 같기도 하다. 우리의 세계가 인지 가능한 면적으로부터 시작된다면, 문명사회에서 전혀 영리하지 않은 이 ‘어설픈 집착’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차원의 세계를 구현하는 일이 될 것.
(@황 경 현 : 작가노트)

불안한 검은 입자들의 군집

“도시 풍경 속에는 삶의 아이러니가 함께 공존한다. 나는 도시의 알록달록한 빛의 색을 삭제하고 밤을 만든다. 밤의 시간대는 정착하지 못 하고 끝없이 유랑하는 현대인들이 페이즈(Phase:자각몽)의 공간에 접어드는 시간이다. 꿈을 자각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 황경현 작가노트 중 –

황경현 작가의 역마[驛馬]는 2013년도부터 진행해왔던 드로잉 중 일부다. 작가는 ‘유랑’, ‘역마’ 등의 단어와 함께 본인의 작업을 이야기하고, 실제 그의 성장과정(작가는 2006년부터 전국 각 지역을 2~3년 간격으로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고 한다.)은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커다란 덩어리 공간을 채우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지만, 서로의 존재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작가는 이 모습들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고, 그들이 남기고 간 먼지를 잡아 놓기라도 하듯 콩테로 흰 종이 위를 흑색으로 채운다. 종이 위를 메우고 있는 콩테는 시간이 지나면서 탈착되고 그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재료의 물성을 잘 이해하면서도 이를 고착하지 않는 이유는 떠돌고 유랑하는 작가 또한 어딘가에 묶이지 않고 싶음인 것일까? 황경현작가가 만들어 놓은 불안한 검은 입자들의 군집은 미묘하게도 빛을 만들어 우리에게 무언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경기창작센터 최윤혜 큐레이터)

문의. 경기창작센터 강민지(032-890-4822)

염부, 기억의 지리학 / People who harvest salt, goegraphy in memory

전시기간
2016. 10. 14 ~ 11. 27
초대일시
2016. 10. 14 (오후 5시)
참여작가
자우녕, 최정수
주    최
경기창작센터
입장료/관람료
없음
관람시간
오전 10시~ 18시 (월요일 휴관)
전시장 정보
갤러리 명 : 경기창작센터 중앙동 테스트베드
주 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로 101-19 경기창작센터 중앙동 테스트베드
전시서문
‘염부, 기억의 지리학’은 자우녕, 최정수 작가의 2인전으로 산업화된 도시 공간이 품고 있던 개인의 기억, 집단의 기억을 현재의 모습에서 다시 바라보는 전시이다. 땅과 사람, 사람과 바다를 품고 있었던 경기 서해 연안의 지역이 지금은 간척되고 매립되어 예전의 모습은 희미한 흔적들로만 남을 뿐이다. 그동안 예술가들은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뜨거운 태양과 바닷바람에 둘려 쌓여 염전 밭을 일구어왔던 삶의 여정을 대면하고 읽어내었다. 그러한 해석의 결과물들로, 설치조형, 영상, 텍스트, 드로잉, 아트 북 등으로 제시된다. 
작가노트(자우녕)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시화호 방조제는 대부도를 육지와 연결하면서 어촌민에게 교통의 편리함을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지락의 보고였던 갯벌이 말할 수 없이 훼손되었고 식생들도 변하였습니다. 섬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80이 넘은 노인들의 여생도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습니다. 대부도의 환경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대부도의 기억을 간직한 연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대부도 노인의 인생사는 오롯이 경기만의 역사이며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도로 제작된「소금밭」의 글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동에 있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기초로 지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염전이라는 하나의 공간은 두 염부의 기억으로 중첩되며 재구성됩니다. 나는 이를 두고 기억의 지리학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작가노트(최정수)
태양, 빛, 시간, 바람, 염전, 소금, 땀과 노동 그리고 기억과 흔적…

이는 이 지역 시흥시의 근대의 역사와 문화와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비단 이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그 주변과 관계를 맺고 문화적, 공간적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장소성은 개인의 기억들이 중첩되어 집단의 역사로 나타난다. 과거 이 지역민의 노동과 삶의 중심이였던 소래염전과 군자염전, 이제는 폐염 되어 과거의 시간으로 사라져 가지만 세찬 바닷바람에 간신히 버텨있는 오래된 소금창고만이 우리의 기억을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