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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기억

기간/ 2011.08.12(금) 10:00 ~ 2011.09.30(금)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상설전시장
 

천대광 작가는 경기창작센터 2011 전시프로그램의 작가로 선정되어 2011년 8월 12일부터 9월 30일까지 경기창작센터 상설전시장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 경기창작센터는 입주자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자 개인전 및 기획전을 연간 10회 내외 운영한다. 본 상설전시 프로그램은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들 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외 입주작가 및 국내 신진작가, 그리고 연구레지던시 입주자를 중심으로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전시 운영에 그 취지를 둔다. ● 작가는 전시섭외가 들어오면 작업 전에 전시장에서 오래 머물러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전시 공간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피어 공간을 재단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작품 자체로 구상하기 위한 작가만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공간이 말을 걸어올 수 있도록 얼마 간의 시간을 준다 고나 할까. 경기창작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선감도 및 대부도 일대가 가지는 지역적인 특성은 겉으로는 여타 해안가 마을에 비해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보편성 기저에는 이 곳만의 역사적인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재 경기창작센터 자리에 일제시대 부랑아 수용소였던 선감원(고아원)시절 자행되었던 고문과 핍박, 최근 연륙사업으로 육지화한 토지와 인근 시화방조제를 둘러싼 개발과 환경 사이의 논란들. 작가는 마치 검은 구름이 뒤덮인 넓은 갯벌의 바다를 보는 것과 같이 우울한 이야기 사이에서 느꼈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창작센터 전시장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작품제목 「어두운 기억들」은 일련의 사건에 대한 직설적이고 솔직한 묘사와 촉각, 시각, 후각을 아우르는 공감각적 경험을 예고한다. ■ 경기창작센터
전시장 입구는 마치 막혀있다. 천정에서부터 양쪽의 벽까지 높고 길게 세워져 있는 벽은 출입구 쪽에는 검은색, 전시장 안쪽에는 흰색으로 칠해져서 관객들은 전시장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전시장 내부의 에어컨디셔너의 세고 찬 바람은 전시장 내부의 온도를 과도하게 낮춰 추운 느낌을 갖도록 한다. 이는 외부와의 온도 차를 극대화 하여 현실과 전시공간과의 이질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관객은 처음에는 시원함을 즐기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시원함이 마냥 편안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치작품의 주재료는 전시장 천정에 덥혀있는 철망과 조명들이다. 전시장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요소들 중 그들의 간단한 위치변동 만으로 공간의 느낌을 완전히 생경하게 만든다. 이는 오브제 사용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고민으로서 건축적 공간변이의 미술적 실험이다. 일종의 레디메이드로 전시가 끝나면 모든 재료는 원위치 되어 오브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역할로 복귀 할 것이다. 대부도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우리의 보편적 이야기이다. 근대사와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는 장소와 시간의 차이에 따라 리듬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지구전체를 흐르며 각 나라마다 일련의 엇비슷한 역사를 만들어 낸다. 가끔 현재성을 잃어버린 역사는 도태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살아남은 시스템 속에서도 개체의 존엄이 큰 흐름에 의해 희생되기도 한다. 작품은 바로 기억에서의 어두운 그 지점에 의식을 맞추고 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을 마치 그것이 실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뇌의 표면에서 지워 버린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내면의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깨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사회는 비정상적이리 만큼 행복을 강요한다. 어떤 부분에선 그건 행복으로 다가가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롯이 우리는 그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 내면의 어떤 기억을 되살리거나 일련의 아름답다고 하는 미술품들과는 다른 감정에 빠질 수 있었으면 한다. 이 작품은 지금 작가의 현재를 보는 의식상태의 반영이기도 하다. ■ 천대광
 

MAN VS W.Wild.W

기간/ 2011.06.30(목) 10:00 ~ 2011.07.30(토)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상설전시장

그들이 사는 세상 the way they are

2011년 3월, 우리나라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올 연말에는 2,0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거리를 오가며, 차를 타고 이동하며, 혹은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한시도 쉬지 않고 정보를 검색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게임을 즐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소통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쌍방향 소통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이다.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과 무선 인터넷 인프라의 구축은 우리 일상생활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단말기를 통해 전 세계 누구와도 친구가 되어 실시간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여가를 즐기는, 다채널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구축된 현실을 살아가는 ‘스마트’한 ‘멀티태스커(multitasker)’들의 세상. 다른 한편에서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온라인화된 환경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뇌의 사고중추인 회백질(gray matter)의 크기가 줄어들어 진짜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으로 변화한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것이 한 온라인 저널을 통해 발표되었고, 다시 어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인용되었으며, 이에 대한 수많은 온라인 사용자들의 갑론을박이 이뤄지고 있는 곳 또한 온라인상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현실과 가상이 대립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하고 뒤엉키는 지점, 이곳을 김웅현은 ‘융합현실’이라는 용어로 주목한다. 온라인상에서 찾아낸 ‘정다운’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진행한 <多運勞頭(Da-woon-ro-doo)>(2010)의 경우, 온라인 게임으로 획득한 가상의 아이템은 현실의 재화(財貨)로 교환되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수의 동명이인(同名異人)에게 온라인 송금되고, 이 돈은 다시 우편을 통해 이에 상당하는 물품으로 되돌려 받는데 사용된다. 한편, 이들이 물건을 구입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은행을 가거나, 우체국을 가는 등 현실에서 이뤄지는 행위를 증거하는 영수증이나 대기표는 그들이 매일매일 동일한 이름으로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적인 글이나 사진과 더불어 동명이인 ‘정다운’들의 궤적을 쫓고,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그들의 정체성을 와해하기도,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구축하기도 한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그 두 세계를 공유하는 작가와 참여자들의 행위는 온라인을 매개로 촉발되어 결국에는 물리적인 실체를 지닌 결과물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렇듯 현실과 가상이 뒤엉켜있는 ‘융합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다시금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한 사건으로 옮겨가고, 이것은 다시 온라인상에 대리인을 내세워 가상현실에서 불특정다수와 소통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자신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온라인으로 방송하며 온라인으로 접속하는 불특정다수와 실시간 소통하는 개인미디어의 형식을 차용한 (2010)에서 작가는 온라인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현실과 온라인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내세워진 대리인을 통해 온라인으로 소통되는 모든 과정을 현실에서 지시하고 지켜본다. 그리고 이 시선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Man vs. Wild”과 온라인 게임의 주인공(캐릭터)이 보여주는 생존방식인 ‘수렵’과 ‘채집’을 ‘융합현실’에 적용하는 작업 <Man vs. W.Wild.W>(2011)로 다시 재현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늘날의 현상을 그대로 옮겨내는 것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면밀하게 관찰하고 정교하게 계획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대담하게 실행에 옮긴 이 일련의 프로젝트들은 김웅현이 주목하는 ‘융합현실’과는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을까? 그가 이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관찰과 계획, 준비와 실행은 어떠한 태도를 전제로 하는 것일까? ‘융합현실’을 관찰하던 그의 시선을 현실에 구현시킨 것은 어떠한 미술적 언어일까? 계속되는 의구심과 질문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현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개인이 처한 현실 그 자체, 혹은 도피적 판타지가 아니라, 오랜 고민 속에서 넓고 깊은 보편적 은유로 드러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는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김웅현의 작업이기에, 그의 값진 시도가 담보하는 미덕은 어떠한 측면에서도 결코 폄하될 수 없다.

독립큐레이터, 경기창작센터 연구레지던시, 김윤경

 

 

 

다크 순풍

기간/ 2011.05.07(토) 10:00 ~ 2011.06.19(일)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상설전시장

다크순풍 Dark Soonpoong

나의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개인전은 약 10년 전에 방송되었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소재로 한다. 이 시트콤은 그 동안 곧 잘 개인적인 심심풀이로 시청되어 왔고 현실적인 극중 설정이나 각종 상황들이 자아내는 즐거움들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몇 편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때때로 몇 가지 의문점이나 호기심들로 발전하여 다양한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연구 대상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방송기간 도중, 또는 극이 종영된 후의 이야기들 통해 떠오른 이렇듯 다양한 생각들은 내가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통해 다루어 왔던 ‘인상적인 기억들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변화되거나 사라지는 기억들에 대한 아쉬움’, 또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등의 문제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시에 선보여지는 ‘다크 순풍’시리즈는 그 소재가 되는 순풍산부인과라는 시트콤의 유쾌한 특성과 비교하여 다소 어두운 인상을 주는 작업들로 성격지어진다. 일례로 이번에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극중 등장인물 박영규의 비밀에 관한 에피소드로부터 내가 느낀 시청자로서의 감정적 반응과 이를 모티브로 제작한 작업의 성질이 그렇다. 극중에 제시된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두고 현실세계의 시청자로서 내가 느낀 감정은 여러 번 반복해 볼수록 우스움 보다는 혼란과 슬픔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된 감정은 평면작품‘다크순풍 5’에서 검정색 표면 위를 여러 번 닦거나 흘려내어 숨겨진 텍스트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극중의 불임 설정이나 배경으로서의 병원이라는 장소는 과거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나의 세 번째 형이나 최근 몇 가지 질병에 시달렸던 나의 불편한 경험들과 겹쳐 보여 짐으로서 다양한 시각적 표현의 계기가 되었다. 

세 가지 평면 작업으로 구성된 다크순풍 1은 순풍산부인과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캡쳐 하여 그려낸 작품이다. 박영규가 습관처럼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몸짓, 마을 전경의 미니어처 들은 전통적인 평면회화의 형식을 취할 때 기존과는 다른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다크순풍 2는 순풍산부인과의 로고 이미지로 병원 접수처에 전시된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그림’을 대형 조각 화 하여 벽면에 설치한 작품이다. 금가고 마모된 듯한 표면을 가진 조각 작품위에는 극중의 당황스런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들의 사진들이 부분적으로 올려져 있다. 
다크순풍 3은 순풍의 미니어쳐 작업으로, 신문기사에 언급된 바와 같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엉망이 되었다는 극중 후반부의 순풍산부인과를 상징하는 산산 조각난 상태로 바닥에 펼쳐져 있다.
다크순풍 4는 최근에 내가 겪었던 다양한 질병들의 진행을 그래프처럼 제시한 울타리 모양의 설치작업이다. 뒷면에 순풍 산부인과 종영 기념 오찬회 신문기사, 나의 진료 소견서 등이 부착되어 있다. 
다크순풍 5는 극중 중후반에 등장하는 박영규의 무정자증 에피소드 줄거리를 타이포그래피 화 하여 전시한 평면작업이다.
셋째 형과 검은 엄마는 유산된 셋째 형에 대한 상상과 유년시절 자주 꿈에 나타났던 무섭고 거대한 형상의 검은 엄마를 상징한다.
I'm not a popper는 특정한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버릇처럼 무의식적으로 떠올려지는 특정한 단어, 또한 그에 이어 꼬리를 무는 또 다른 단어들과 생각들에 관한 작업이다.

 

 

 

Bruit qui pense 생각하는 소음

기간/ 2011.04.09(토) 10:00 ~ 2011.04.30(토)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중앙동 상설전시장

“나는 여러 수단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시각적 수수께끼를 제안한다. 그 내면에는 자연미와 야생미에 인공미가 조화를 이룬다. 나의 작품세계는 이동성과 적응의 행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를 통해 왜 사회적 영역과 인간의 습관을 연관 짖고자 한다. 정치, 신화, 사회, 지리, 인류학, 자연사적인 교차점에서 나는 현대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나는 계속해서 구체적인 지점으로 돌아온다. “다른 곳”으로 이처럼 이동하여 분명 두 시대 사이를 오가며 사고하게 된다.” 크리스틴 라께

*크리스틴 라께(1975출생, 낭트와 파리를 오가며 거주 및 작품활동, 프랑스)는 Lyon Fine Art School을 2000년도에 졸업한 이후 비디오, 회화, 사진, 설치 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 들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허구와 의식(rite)의 미술뿐 아니라 괴물성, 공포 혹은 변덕의 미술을 아우르는 바로크 감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녀는 국제무대 (인스브룩크, 하노버, 방콕, 헤시피, 상파울로, 포즈난, 뉴욕 등)뿐 아니라 프랑스의 여러 화랑과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Once upon a time (2005, 22min)

기간/ 2011.04.09(토) 10:00 ~ 2011.04.30(토)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중앙동 지하전시실

이 작품은 고정된 카메라 앵글의 제한으로 이루어진다. 카메라 한 대가 계속 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방한가운데에 있는 기준점 위에서 촬영을 한다. 카메라 작동은 너무나 놀랍게도 이루어져 그 결과 코리타 슈니트의 작업으로 귀착되는데, 평범한 거실이 점진적으로 애완동물들로 점령당하고, 서서히 황폐화한다. 동화같은 이야기… 옛날에, 인간이 길들여지자, 그 동반자들이 문명화된 공간을 재정복하였다…. 슈니츠는 매우 정확한 영화촬영법에 기반을 두고 회화적인 언어를 적용한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상호보완적이다. 슈니트의 비디오에서 그녀가 만든 현장과 연출된 장소들은 사회적 가치와 코드의 완전한 시스템에서 개인을 어떻게 위치시키는지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소통의 의미와 상호작용을 다루며, 현대적 역기능에 대하여 표현한다. 그녀는 클리셰를 연출하고 작가가 관찰하는 사회적 가치 판단에 대한 인식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며 ,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권유한다.

*코리나 슈니트 (1964년생, 쾰른과 베를린을 오가며 거주 및 활동, 독일) 코리나 슈니트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마이스터쉴러 취득하고 현 브라운슈바이츠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1년 경기창작센터 멘토링 프로그램의 비지터로 초청된바 있다.

 

 

<뫔>프로젝트 2011

기간/ 2011.02.14(월) 10:00 ~ 2011.04.03(일)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상설전시실

경기창작센터 앞에 모텔과 성당이 마주 보고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

모텔방을 빌렸다.

창가에 흰깃발을 걸었다.

어슴프레 어두워지면 모텔에는 네온이 빛난다.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랑, 평화, 종교, 인종, 통일, 세습, 평등, 행복, 가족…..

모텔방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두 번째 프로젝트

모텔방을 빌렸다.

창가에 흰깃발을 걸었다.

모텔방 안은 하얀 속 살 같다.

하얀 모텔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화살촉 같이 날카로운 소리들이 미세한 이야기를 나눈다.

몸 목 배 등 팔 손 발 혹 좆 씹 좆 씨 밑 뺨 이 혀 입 코 눈 귀 볼 골 턱 뼈 피 살 뿔 낯 점 멍 땀 털 때 똥 침 힘 숨 잠 키 뼘 님 끼 깡 꾀 꼴 얼 말 맘

바늘처럼 예리하게 찌르고 피 흘리는 소리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소리들로 사람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성당의 저녁종이 울린다. 댕댕댕댕댕

 

이순종

 

 

 

 

 

 

 

 

<아브락사스(Abraxas)를 향하여> 보호의 공간 / 위험한 오브제

기간/ 2011.02.14(월) 10:00 ~ 2011.04.03(일)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지하전시실, 중앙동202호

아브락사스(Abraxas)를 향하여

 

새에게 알은 파괴해야 되는 세상이다. 이는 새가 되기 위한 필연적인 전제다. 새와 알은 불행하게도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알을 깨야 만이 새로서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리디 어린 새가 알을 깨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또 그 알이 단지 깨야 되는 외부 존재나 외부 환경이 아니라, 바로 자신 그 자체일 때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 그래야만이 새는 자신의 신인 아브락사스로 향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깨야하는 하나의 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알들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 알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은폐시킨 우리의 세상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알들을 깨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 알 내부에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도 알고 있다. 그래서 ‘꼭 새가 되어야 하나? 또는 그냥 이렇게 알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편하게 살면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이 알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없음을.

 

박준식도 지금 알을 깨려고 하는 새의 상태와 같다. 그의 작품도 이러한 갈등에서 출발한다. ‘보호의 공간’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그는 그곳에 숨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도 안다. 그 어디에도 그를 보호해줄 공간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가상성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위적 막을 설치하고 그 뒤로 숨는다. 그러나 완전히 숨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알의 바깥 세상에 대한 예민한 관심의 촉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맥루언(McLuhan)이 이야기했듯이, 예술가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 박준식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깥세상을 향한 예민한 촉수로 외부 세계를 탐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인위적으로 보호의 공간에 설치한 막은 투명하지고 않고 불투명하지고 않다. 보고 싶음과 보고 싶지 않음이 변증법적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박준식은 그러한 막 뒤에서 자신의 형상을 흐릿하게 드러낸다. 막 뒤의 공간에는 자신만이 있다. 그러나 막 뒤에 숨은 그는 정면을 응시한다. 비록 막 뒤에 있지만,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이는 타자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타자가 자신을 응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막 뒤에 있는 보호의 공간에서는 타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그 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타자를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 불투명한 막 뒤로 숨어버린 그는 자신을 완전히 숨기지도 않고, 또 온전히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불안과 욕망의 충동은 구겨진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막 때문에 그의 이미지는 구겨져 있다. 마치 베이컨(Bacon)의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들처럼 기괴하게 보인다.

 

그런 그가 스스로 새가 알에서 벗어나듯이 ‘보호의 공간’에서 깨어 나오려 한다. 아니 처음에는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보호의 공간 안에 외부 세계를 포섭한다. 보호의 공간 안에 있는 ‘위험한 땅’이라는 역설을 통해 그는 그의 갈등을 표출한다. 그는 비로소 그 막을 찢고 나온다. 밖으로 나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브락사스가 아니라, 또 다른 알인 ‘위험한 땅’이다. 외부 세계가 위험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보호의 공간’이라는 역설적인 공간이 보여주었다.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뭔가 위험이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새에게 위험한 세상이 기다고 있듯이, 보호의 공간을 찢고 나온 그를 기다리는 세상은 위험한 땅이다. 박준식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듯이 덤덤히 받아들인다. 우리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말이다. 보호의 막을 통해 안과 밖의 경계, 즉 보호의 공간이라는 가상적 틈새에 있던 그가 이제, 그 경계에서 선을 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그 공간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치 언제 자기가 보호의 공간에 있었냐는 듯이 공간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위험한 오브제’이다.

 

그가 ‘위험한 오브제’를 통해서 위험한 공간에 개입하는 순간, 공간은 이상하게도 다른 모습을 지니기 시작한다. 위험하긴 한데, 뭔가 마술적인 작용을 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의 ‘위험한 오브제’ 시리즈는 마치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작용한다. 여기가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상상력이라는 게 무엇인가? 플루서(Flusser)가 정확히 이야기한 것처럼 상상력이란 세계의 사태를 하나의 장면으로 축소해서 평면에 드러내는 능력이다. 박준식의 상상력과 위험한 땅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위험한 오브제다.

 

이 만나는 지점을 그는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이 사실 매우 위험한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보여준다. 그런데 섬뜩하기 보다는 환영적이며, 또 때로는 초현실적이다. 그래서 그의 이 시리즈는 마치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rica)의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이 영화에서는 집시의 고단하고 고통스럽고 희망 없는 삶을 마술적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보여준다. 박준식의 위험한 오브제는 물고기 같기도 하고, 폭탄 같기도 하다. 또 이 ‘위험한 오브제’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이 상황은 매우 비극적인데, 그는 담담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러낸다. 그래서 이 ‘위험한 오브제’가 만들어내는 상황을 응시하고 있으면, 귓가에 흥겨운 집시풍의 음악이 흐르는 것과 같은 공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란 일종의 집시일 수 있다. 즉, 자유롭지만 힘든 상황에서 주술적인 힘, 상황을 희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집시와 같다. 이러한 힘을 가지고 사회에 예술적으로 개입하는 예술가는 집시다.

 

어쨌든 박준식은 알에서 깨어 나와, 사회 그리고 타자와 서로 교감을 나누려고 한다. 그리고 이 교감의 장에 기꺼이 타자들을 불러들인다. 혼자만이 아브락사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브락사스로 향하자고 말이다. 물론 그가 보호의 공간에서 벗어나, 위험한 땅을 직시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도달하고자 하는 아브락사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알을 깨고 나와야 아브락사스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심 혜련(전북대학교 교수)

 

 

 

 

 

 

 

 

 

 

 

 

“첫 번째 접촉”

기간/ 2011.02.20(일) 10:00 ~ 2011.03.30(수) 17:00
장소/ 경기도미술관 1층 프로젝트 갤러리

‘첫 번째 접촉First Contact’ 프로젝트는 경기창작센터 연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 것으로, 공공 장소에서 진행된 일련의 미술적 실험과 개입 행위들을 통해 경기도 지역 내에서의 시각예술 참여도를 고찰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예술적 실험과 개입 행위들은 전형적인 마케팅 기제들을 다룸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나아가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프로젝트의 경험적 연구 방식은 잠재적인 것에 대한 비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실제 미술 관람객들에게 예술의 주된 연구와 접근방식을 대신하여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의 전형적 요소들을 통해 예술을 마케팅 하는 행위와 분야로서의 예술마케팅을 대조시키고자 한다.

 

‘첫 번째 접촉First Contact’ 프로젝트의 예술적 개입 행위는 2010년 12월 12일부터 25일까지 대부도, 안산을 포함한 경기도 일대 그리고 서울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시행되었다. 16세에서 65세 사이의 172 명이 ‘첫 번째 접촉First Contact’ 조사에 참여하였다.

 

‘첫 번째 접촉First Contact’ 프로젝트는 비디오, 사진, 텍스트, 그림, 그리고 여타 데이터/기록 형식을 통해 전시 된다.

 

 

 

 

 

<음절완구>

기간/ 2011.01.13(목) 10:00 ~ 2011.02.10(목) 17:00
장소/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음절을 의미하는 syllable과 완구를 의미하는 brick의 합성어로 phoneme(음소)를 몸의 구성요소로 갖는 장난감이다. 언어가 문자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소통으로서의 목적성이 강조됨으로 인해 잃어버린 표현으로서의 유희성을 되찾기 위해 제작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온 한글의 제자원리를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초성 14종, 중성 10종, 종성 14종으로 총 38종의 brick으로 구성된다. 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총 11,172가지의 조합을 할 수 있으며, 자유 조합을 할 경우에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조합이 가능하다. ■ 김용관

 

 

 

 

 

 

<파블로프의 사나운 개와 슈뢰딩거의 게으른 고양이>

기간/ 2010.12.08(수) 10:00 ~ 2011.01.31(월) 17:00
장소/ 경기창작센터 중앙동 상설전시장, 중앙동 지하실

아티스트 톡 + 출판기념회

– 초대일시 : 2010_1218_토요일_4:00pm

– 셔틀버스 : 합정역 1번, 2번출구 사이 2:00pm

 

안지미+이부록은 새로운 선택에 의해 낡고 불편한 것으로 배제된 무수히 많은 것들,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두려움과 강박증, 개발논리가 우선한 정책에 의해 빠르고 강하게 소비되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오마주, 탐사와 기록 및 오브제 제작, 참여와 공유, 퍼포먼스와 전시, 그리고 이 모두를 담는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뉴이즘 운동 Newism Movement 』이라 명명합니다.『Newism Movement』는 경기창작센터가 위치한 지역적 특징(섬)을 활용한 장소특정적인 프로젝트로 사람들의 유입-동선에 의해 양산된 노동의 구조와 사회적 매뉴얼들을 찾아내고, 재해석하여 오늘의 시각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블로프의 사나운 개와 슈뢰딩거의 게으른 고양이>展은 『Newism Movement』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장소의 맥락과 사람들 간의 역학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7채널 영상작품과 및 설치와 아티스트 북으로 재구성된 본 프로젝트의 과정+결과는 파블로프와 슈뢰딩거의 대화 속에서 가상의 사건을 모티브로 모호하지만 분명히 우리의 현재 속에서 함께하고 있는 개발논리의 이면, 사라진 시공간의 기억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자석신Magnet+…

– 파블로프의 사나운 개와 슈뢰딩거의 게으른 고양이

 

2010년 가을, 자석신(Mag+신shoes)을 신고 목가적인 선감도의 낙조를 바라보며(자석+신scene) 어느덧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신질서(자석+신new)를 확립한다는 명목아래 한반도 및 대륙을 점령하고 있었고, 도시의 안정적 지배를 위해 섬에 수용소를 만들고 부랑아를 격리해 황국신민화교육과 가혹한 노동을 시켰다. 견디기 힘든 아이들이 탈출을 시도하다 많은 주검(자석+신ghost)이 되었고, 그 흔적은 섬 주민들의 기억에 내재되어 있었다.

식민 지배를 혹독히 겪고 소외됐던 지역이 어떻게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동아시아의 정세, 나아가 국제 관계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다 좀 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접근해, 근대 초기 파블로프의 개 조건반사 실험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역학 확률 실험이 우리에게 미쳤을지 모르는 그 파장의 결과를 기호반응에 적용해 유추해 질문하기로 했다.

즉, 하나의 지역에서 일어난 과거의 미시적 사건이 거시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 때 역사는 조건과 작용에 의해 결정되고, 그 분기점으로 현실이 확률에 의해 고정된다면, 왜 인간은 빛이나 입자처럼 같은 시간과 공간을 통과했는데 다른 간섭에 의해 지배받게 되는 것일까?

 

안지미+이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