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공동체적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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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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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인(미팅룸 디렉터, 독립큐레이터)
레지던시의 변화와 각성의 필요성
창작스튜디오(이하 레지던시)가 설립된 고유의 목적은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교류를 통해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국공립 기관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지는 20년이 조금 넘은 지금, 국내 미술계에서는 레지던시 형태의 변화,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다양한 운영 주체와 운영 방식이 존재하지 않고,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레지던시가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그에 따라 레지던시 운영 방식이 획일화된 형식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 지역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변화와 개선의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큰 틀의 변화 없이 국공립 레지던시의 프로그램이 미술계 내에서 창작자의 행보와 현대미술의 흐름, 동시대 작가 연구와 관련 미술사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등 레지던시의 운영주체와 획일화된 프로그램 운영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요인들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레지던시 제도의 정립과 실천의 역사 속에서 야기된 이러한 문제점은 서로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오늘날 레지던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변화, 각성의 필요성을 보다 강력하게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영상 1> 장진택. <2023 난지액세스: 랠리> 연계 대담회, “레지던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출처1.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채널
출처2. SeMA Coral 난지 액세스
이러한 가운데 해외 레지던시와 그 운영 주체들의 국제적 네트워킹 움직임은 급변하는 사회의 움직임에 따라 동시대 창작자를 위한 지원의 형태를 어떻게 세분화하고 있는지, 어떠한 운영 방침과 미션 아래 기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는지, 그리고 레지던시와 관련한 기관들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함께 논의하는지 등에 대해 유효한 연구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창작자 중심의 레지던시 운영을 위한 기관의 노력과 변화의 움직임>을 주제로 한 본 연재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한 해외의 주요 레지던시 기관과 프로그램 운영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레지던시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인식을 재고하고, 예술가의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해 레지던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공동체적 움직임
레지던시의 참여 대상은 다양한 문화, 사회적 배경을 지닌 창작자인 동시에 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즉, 레지던시는 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구성원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작은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데에는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외에도 거주 문제, 동료 입주 작가 및 지역 사회, 운영 기관와의 관계 설정, 기타 공동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과 그에 관한 규칙, 규정, 기준 설정 등 커뮤니티의 유지, 관리를 위한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레지던시는 점차 자국 작가의 지원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를 포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기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입주 작가의 국적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으며, 국가 간의 비자 발급 기준에 따라 입주 기간과 입주 방식도 보다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세계 각국의 레지던시는 이러한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 타 레지던시와의 연대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레지던시 간의 상호 연대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레스 아티스(Res Artis), 미국의 아티스트 커뮤니티 연합(Artist Communities Alliance), 트랜스아티스트(TransArtists)를 들 수 있다.
1) 레스 아티스1
레스 아티스(Res Artis)는 전 세계 80여 개국 600개 이상의 레지던시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국제 레지던시 네트워크로, 호주 멜버른에 본부를 두고 있다. 1993년 독일에서 출범 후 30년의 역사를 지닌 레스 아티스는 기관의 정체성에 걸맞게 전 세계 레지던시를 연결하는 하나의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각 기관이 레지던시로서의 전문성을 갖추고, 입주 작가들에 대한 지원이 보다 보완된 전략과 대비책을 통해 안정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국가 간의 다양한 국제 교류가 이뤄지고, 그에 대한 지원정책이 날로 다채로워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레스 아티스는 문화 이동성(Cultural Mobility)에 대한 연구와 정책을 연구하면서 그에 대한 실질적인 툴로서의 정보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 공유하고 있다.(문화 이동성을 고려한 기관의 정보 수집과 배포 노력은 연재 후반부에서 다시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으로 한다.)
<영상 2> 레스 아티스의 탄생과 26년간의 역사를 짧은 다큐멘터리 <레스 아티스: 그 시작>. 창립 멤버이자 레스 아티스의 초대 회장인 마이클 하르트터(Michael Haerdter)의 인터뷰 영상.
출처. Res Artis Documentary 25
레스 아티스는 라틴어로 '예술을 위하여(For the Arts)'를 뜻하는 기관의 이름처럼, 예술가의 창작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전 세계 레지던시의 건강한 운영과 연대, 지속적인 발전과 유지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대표 그룹이자 플랫폼으로서, 해외 각국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의 기관 전문성 개발을 위한 일종의 조력자이자, 운영에 필요한 중요한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활동은 레스 아티스의 회원들과 함께하는 대면 컨퍼런스다. 컨퍼런스의 규모는 최소 30명에서 최대 500명까지 다양하며, 개최지 주변의 레지던시에 대한 소개와 함께 최근 아티스트 레지던시 분야에서 대두되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직접 만나고 토론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레스 아티스는 각 레지던시가 지닌 지역적, 문화적, 구조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레지던시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해외 각지의 레지던시 정보를 한 데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연대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감을 갖고 있는 기관으로서 예술가, 기관 관계자, 연구자들에게 오늘날 레지던시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일련의 활동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1> 레스 아티스(Res Artis) 공식 홈페이지 |
<사진2> 아티스트 커뮤니티 연합(Artist Communities Alliance) 공식 홈페이지 |
2) 아티스트 커뮤니티 연합2
1991년에 시작된 아티스트 커뮤니티 연합(Artist Communities Alliance, 이하 ACA)은 미국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기반을 둔 연합체로 미국 50개 주와 20개국에서 가입한 300개 이상의 단체와 개인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ACA가 레지던시 분야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그룹은 크게 둘로 나뉘는 데, 하나는 레지던시 자체에 지원하는 개인이나 그룹(작가, 문화예술 매개자, 자원봉사자, 지역사회 구성원 등), 또 하나는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기관 및 단체(기관과 단체의 관계자 포함)다.
ACA는 지난 30여년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레지던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미국 내 레지던시 커뮤니티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과 컨퍼런스 개최, 멤버십 프로그램을 통해 레지던시 분야와 모든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힘쓴다. 또한 레지던시와 관련한 연구 및 평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레지던시 기관 및 관계자들 간의 교류를 촉진하며, 문화예술재단 및 유관 기관과 협력하여 예술가 및 관련 프로그램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ACA의 가장 큰 특징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기관 및 기관 관계자, 그리고 레지던시에 지원하는 예술가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장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각 레지던시의 입장과 대응에 귀를 기울이고, 이것을 실현가능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커뮤니티 구성원, 즉 개인을 비롯한 기관에 이르기까지 실무자들의 현장 경험과 예술계 생태, 작가들의 창작 활동, 기관의 조직 구성과 인적, 물적 자원 관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결과다. 무엇보다 개인과 기관 모두에 유용한 정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ACA 멤버쉽 가입자들과의 정기적으로 온오프라인상의 회의를 진행하거나 워크숍과 ACA 정기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의 활발한 프로그램 운영은 아티스트 커뮤니티, 그리고 커뮤니티를 유지 관리하는 기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도움을 준다.
3) 더치컬처 | 트랜스아티스트3
1997년에 시작된 더치컬처〡트랜스아티스트(DutchCulture〡TransArtists, 이하 트랜스아티스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네덜란드문화국제협력센터인 더치컬처(DutchCulture- Center for International Cultural Cooperation)4 사업의 일환이자 일원으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모으고 유관 기관과 협력하여, 예술가들의 레지던시 참여 기회에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네트워크다. 이들의 활동은 크게 동명의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과 레지던시에 관한 다각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지식 정보 리소스 제공, 예술가와 기관을 위한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 제공, 온라인 매거진 발행, 출판, 네덜란드와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AiR Platform NL’ 구축, 국가 간에 레지던시에 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심도 있게 나누는 ‘상호 자극 프로젝트(Mutual AiR Impulse)’ 등을 들 수 있다.
<사진3> 트랜스아티스트(DutchCulture〡TransArtists) 공식 홈페이지 |
<사진4> 더치컬처(DutchCulture) 공식 홈페이지 |
트랜스아티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적으로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과 그 결과는 예술가의 관점에서 기획, 제공되어 있으며, 레지던시 입주 경험이 있는 예술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기관의 경험이 그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예술가로서 막 행보를 시작하는 신진 작가, 창작을 위한 시간적 여유 혹은 휴식기를 찾는 기성 작가에게 레지던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정보와 툴을 제공한다. 그 예로 트랜스아티스트는 레지던시 입주를 희망하는 작가와 레지던시의 운영 주체를 위한 체크리스트 트랜스아티스트의 체크리스트5를 공유한다.
<사진5> 트랜스아티스트의 체크리스트. 레지던시를 희망하는 예술가는 지원 동기(교육, 창작, 창작을 위한 일시적인 고립, 협업, 전문성 강화 등), 검색 및 선택, 신청하기, 지원금 확인이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통해 본인 스스로 지원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요구사항과 기대치에 부합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기관도 효과적인 레지던시를 시작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과 쟁점에 대해 간략한 개요를 제공 받을 수 있다. 크게는 프로필과 실무적인 사항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프로필 체크리스트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자 하는 신생 기관이 기관 프로필과 정체성 구축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안들, 즉 시작 동기, 기관이 속해 있는 현재의 상황, 기관이 수행하고자 하는 역할에 대해 사전에 점검해야 할 내용들을 포함한다. 실무 사항 체크리스트는 레지던시를 조직하고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 레지던시와 관련한 계약 및 규정, 보험, 입주 작가의 비자 문제 등 레지던시 운영 기관이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관련 정보와 가이드라인도 함께 제공한다.
이상으로 레스 아티스, ACA, 트랜스아티스트와 같은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성격과 특징, 주요 활동 및 서비스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봤다. 다음 연재에서는 세 기관의 레지던시 관련 데이터베이스와 각종 리소스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본 연재는 지난 2023년 해외 레지던시 운영 사례 조사 및 연구 <창작자 중심의 레지던시 운영을 위한 기관의 노력과 변화의 움직임>에 기초한 기획 연재 시리즈입니다.
저자 황정인은 미술이론과 문화산업을 공부하고, 사비나미술관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했다. 현재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미팅룸의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필라델피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다국적 콘텐츠 크리에이션 에이전시 컬처플리퍼의 아트 프로젝트 그룹 팀장으로 재직하며, 국내외 문화예술기관 콘텐츠의 해외 현지화 사업을 돕는 일을 했다. 이를 계기로 최근에는 문화예술기관의 디지털화 전략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온라인 플랫폼 설계와 운영에 관심이 많으며, 지식 정보를 매개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