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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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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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인(미팅룸 디렉터, 독립큐레이터)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데이터베이스
앞서 연재에서 소개한 레스 아티스, 아티스트커뮤니티연합(ACA), 트랜스아티스트는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 세계 레지던시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레지던시를 희망하는 예술가 혹은 기관 관계자, 연구자에게 해당 레지던시에 관한 디렉터리와 함께 레지던시 생활, 레지던시 운영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의 디렉터리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카테고리로 나눠 분류한 만큼, 각각의 기준은 레지던시 운영 방식이 얼마나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는지 잘 말해준다. 이번 연재에서는 레스 아티스, ACA, 트랜스아티스트가 구축하고 있는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주체로서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유용한 자료로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표 1>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레지던시 디렉터리 데이터베이스 보유 현황 및 기본 정보 비교(2024년 8월 기준)
ⓒ 황정인
1) 레스 아티스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1
먼저 레스 아티스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인 레지던시 프로파일(Residency Profiles)에는 총 627개의 레지던시 정보가 등록되어 있다. 자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용자는 지역, 국가, 도시, 분야, 예술 시설, 생활 시설, 스튜디오 유형 및 크기, 거주 기간, 조직 유형, 거주 비용, 환경, 숙박 형태, 업무 언어, 동반자 허용, 휠체어 이용 가능 등 총 15가지의 분류 기준에 따라 레지던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데이터베이스에는 레지던시 운영 기간이 1주일에서 1년 이상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입주자 개인과 가족 및 반려동물 동반 여부에 따라 숙소 형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
<사진1> 레스 아티스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인 레지던시 프로파일(Residency Profiles)
출처. https://resartis.org/listings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 외에도,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는 리소스를 좀 더 살펴보면,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를 포용하는 움직임으로 변화하고 있는 레지던시의 특성상 문화이동성을 고려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볼 수 있는 위험에 처한 크리에이티브(창작자/기관)를 위한 디렉터리(Creatives at Risk)2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위협받는 예술가를 보호하는 기관, 예술가의 인권 보호, 전쟁이나 기타 물리적 상황으로 인해 피난처가 필요한 예술가들을 위해 함께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주요 기관 리스트를 제공한다. 한편 디지털 러닝(Digital Learning) 디렉터리3는 코로나19와 전쟁 등 재난과 위기의 상황 속에서 대안이 된 온라인 레지던시, 거주지나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시 등 일반적인 레지던시 형태에서 벗어난 형태의 레지던시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문화예술계 관계자들과의 온라인 웨비나, 팟캐스트 토론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 기관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고양레지던시,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레지던시, 충남창작스튜디오, 너티뮤즈스튜디오 등 총 7개의 레지던시가 레스 아티스 회원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사진2> 레스 아티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디지털 자료 중 대표적인 사례인 위험에 처한 창작자와 기관을 위한 디렉터리(Creatives at Risk)
출처. https://resartis.org/creatives-at-risk
2) ACA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4
ACA는 하나 이상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미술관)이나 재단, 기금 지원처, 예술 관련 단체 등 아티스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회원관으로 있는 만큼, 예술가와 레지던시 운영자를 위한 다양한 데이터베이스가 갖춰져 있다. 데이터베이스 디렉터리는 크게 4가지 카테고리로 분류되는데, 기관(Organizations), 레지던시 프로그램(Residency Programs), 입주 작가 모집(Open Calls), 채용 공고(Job Board)가 그것이다.
이 중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리가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디렉터리의 분류 기준이 매우 섬세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디렉터리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명, 기관명, 국가, 도시, 주(미국), 레지던시 기금 지원 가능, 레지던시 우선순위, 프로그램 유형, 환경조건, 분야, 스튜디오/특수 장비, 스튜디오/시설 접근성, 반려동물 동반 등 총 13개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 중 레지던시 기금 지원 가능성과 우선순위 기준, 프로그램 유형이 제시하는 하위 카테고리 목록이 눈길을 끈다.
<사진3> ACA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디렉터리
출처. https://artistcommunities.org/directory
기금 지원 가능성의 경우, 하위 카테고리를 전액 지원, 부분 지원 등 단순히 기금의 지원 규모로만 분류하지 않고, 예술가의 인권 및 권리 보호, 창작 지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흑인, 원주민 및 유색인종을 뜻하는 BIPOC(Black, Indigenous, People of Color) 아티스트를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는지, 성소수자(LGBTQIA2S+) 아티스트를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는지,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 중인 아티스트들을 위한 기금 지원이 가능한 레지던시인지 구체적인 분류 기준을 적용하여 본인의 상황에 더 부합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레지던시 운영 주체 혹은 운영 방침을 기준으로 한 검색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주도 혹은 예술가가 설립한 레지던시인지, BIPOC 아티스트가 설립 혹은 주도하는 레지던시인지, BIPOC 아티스트를 비롯하여 장애인 및 청각 장애인, LGBTQI2A+ 아티스트, 아이가 있는 부모 아티스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지, 미국장애인법(American with Disabilities Act, ADA)을 준수하는 캠퍼스 및 시설이 갖춰진 곳인지, 특별한 기준 없이 전 세계 어디에서든 거주 중인 아티스트에게 모두 개방되어 있는지가 레지던시 선택의 기준이 된다.
<사진4> ACA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검색 가이드
출처. https://artistcommunities.org/artists/find-residency
아울러 프로그램 유형도 스튜디오의 숙소 포함 여부를 단순히 묻는 것을 넘어 특정 주제가 있는 프로그램인지, 커뮤니티 참여형에 초점을 맞춘 곳인지, 연구나 체험, 혹은 커리큘럼 기반의 프로그램인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 은둔형 프로그램인지 여부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레지던시의 환경 조건도 도시, 교외, 지방, 원격으로 나뉘는데, 원격 레지던시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보다 본격화된 레지던시의 형태로 많은 기관들이 지원 형태에 포함시키고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ACA 네트워크 중 한국 기관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고양레지던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레지던시가 회원관으로 가입되어 있다.
3) 트랜스아티스트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5
트랜스아티스트는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검색할 수 있는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이곳의 데이터베이스는 레지던시에 대한 단순 정보 제공이 아니라, 레지던시 입주 경험 작가들의 이야기와 담당자 연락처, 조언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곳의 데이터베이스는 레지던시에 대한 기본 정보 외에도 레지던시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레지던시 운영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체크리스트(TransArtists Checklists)를 제공하고 있으며, 레지던시와 관련한 도서와 논문, 관련 기사와 뉴스를 찾아볼 수 있는 페이지를 두어 레지던시 운영자, 연구자,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진5> 트랜스아티스트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인 AIR Database
출처. https://www.transartists.org/en/map
특히 이곳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컬렉션(AiR Colletion)6 은 레지던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경험,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을 각각의 특별한 기획 주제로 엮은 아카이브 컬렉션이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트랜스아티스트의 운영진이 직접 정리한 에어 컬렉션은 레지던시가 지닌 특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이러한 움직임은 레지던시를 하나의 제도로 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넘어 레지던시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아티스트 커뮤니티로 기능하면서 우리 사회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어떠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인간, 그리고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층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려는 트랜스아티스트의 노력이기도 하다. 참고로 트랜스아티스트의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에는 한국의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 금천예술공장, 서울무용센터,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 대구문화재단 가창예술창작스튜디오(2023년 운영 종료), 대전문화재단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레지던시,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시, 바림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아트센터나비 나비 아티스트 레지던시,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외에 프로젝트 기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등록되어 있다.
출처. https://www.transartists.org/en/air-collections-overview
이처럼 세 기관이 제공하고 있는 레지던시 데이터베이스의 분류 기준과 레지던시와 관련한 유용한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은 결국 레지던시 고유의 목적이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지원에 있으며, 이를 위한 프로그램 기획의 중심에 예술가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세 기관 모두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로서 문화이동성이 잦은 현대사회에서 변화하는 생활 방식과 사회 안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이슈와 현실 문제들을 하나의 작은 커뮤니티인 레지던시 맥락 안에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레지던시 운영 주체와 운영 방식의 다양성
무엇보다 이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레지던시 운영 주체의 다양성이다. 박물관이나 정부 부처 외에도 민간 차원의 레지던시 운영이 활발하며, 프로그램 운영의 주체가 전문 문화예술기관이 주축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술가 혹은 예술가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공존하기 때문에 레지던시의 종류가 다양하고, 각 레지던시 특성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저마다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연합(EU)은 24개의 EU 회원국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전문가들과 함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관한 정책 핸드북(Policy Handbook on Artists' Residencies)》(EU, 2014)7을 발행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정책 입안자를 비롯하여 기금 제공자, 문화예술단체와 예술가가 레지던시의 의미와 역할을 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럽 각국의 레지던시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현지인이 여행자를 위해 소파를 제공하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방식처럼 예술가 한 명이 또 다른 예술가 한 명을 정기적으로 초대하여 작업실에서 함께 머물며 작업하는 소규모 형태의 ‘나노 레지던시(Nano Residency)’, 일반적인 레지던시 기간(6개월~2년)과 달리 하루, 1주, 2주, 4주, 6주, 3개월 등 단발성 내지 단기, 초단기로 운영하는 레지던시 등 예술가의 선호도와 개인적 상황, 사회, 경제 현실, 문화이동성을 고려한 레지던시 운영 주체와 운영 방식, 운영 기간의 다각화에 대해 언급한다.8
<사진7> EU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관한 정책 핸드북(Policy Handbook on Artists' Residencies- European Agenda for Culture: Work Plan for Culture 2011-2014)》(EU, 2014)
출처. https://op.europa.eu/en/publication-detail/-/publication/
국내 미술계의 경우 문화예술사업의 정부 기금 의존도가 매우 높고, 국공립 미술관이나 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예술가 단체부터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대규모 정부 지원 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단체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글로벌 레지던시 네트워크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는 국내 레지던시의 획일적인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재차 상기시킨다.
본 연재는 지난 2023년 해외 레지던시 운영 사례 조사 및 연구 <창작자 중심의 레지던시 운영을 위한 기관의 노력과 변화의 움직임>에 기초한 기획 연재 시리즈입니다.
저자 황정인은 미술이론과 문화산업을 공부하고, 사비나미술관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했다. 현재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미팅룸의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필라델피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다국적 콘텐츠 크리에이션 에이전시 컬처플리퍼의 아트 프로젝트 그룹 팀장으로 재직하며, 국내외 문화예술기관 콘텐츠의 해외 현지화 사업을 돕는 일을 했다. 이를 계기로 최근에는 문화예술기관의 디지털화 전략과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온라인 플랫폼 설계와 운영에 관심이 많으며, 지식 정보를 매개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