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유산: 작품 및 아카이브의 기증에 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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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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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룸×경기창작캠퍼스_<미팅앤토크 2024>_아카이브편
ㅇ 진행 및 편집 : 지가은(미팅룸 아트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
ㅇ 보조 진행 : 조자현(미팅룸 작품보존 연구팀 디렉터)
황정인(미팅룸 대표)
ㅇ 참여 패널 : 성석(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
유예동(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학예연구사)
이지은(前 국립현대미술관 아키비스트)
시작하며
“작품의 의미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연구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드러날 수 있는 아카이브의 맥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팅룸 사무실에서 진행된 <미팅앤토크> 장면. 왼쪽부터 유예동, 지가은, 이지은, 성석. 사진제공. 미팅룸
예술가의 유산에는 정신적인 측면과 물리적인 측면이 모두 있다. 물리적인 유산에는 예술작품과 기록물, 그리고 그 예술가가 거주했던 공간이나 작업실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예술가의 유산이 후대에 전달되는 방식도 다양하다. 관련 기관에서 이를 직접 수집하거나 기증을 받아 관리하는 방식이 있고 유족이나 재단 등 민간의 차원에서 관리되는 경우도 있다.
<미팅앤토크> 아카이브편은 미술관과 박물관 현장에서 작품 및 기록물 수집과 관리를 담당해 온 아키비스트 한 분, 학예연구사 두 분을 초대해 이러한 물리적인 예술가 유산의 형태 가운데 작품 자체와 관련 기록물, 즉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특히 ‘기증’을 통해 이루어지는 기관 차원의 유산 관리에 국한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기증 주체나 관련 종사자가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과 기록물의 기증 절차와 과정의 실제를 들여다보고 기증된 컬렉션을 활용해 그 유산의 의미를 재확산시키는 활동도 공유해본다. 더불어 예술가 유산을 다루는 현장 실무자로서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민도 들어봤다.
Q. 먼저 현재 소속 기관에서의 담당 업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성석 |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립을 준비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다. 사진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지 이제 막 3개월 정도 됐다. 그전에는 서울시 본청의 박물관 건립 사업추진단에서 일을 하면서 2020년부터 서울공예박물관 건립 및 개관 준비에 참여했고 박물관 개관 후에는 수집 담당 학예사로 일했다. 작품 및 기록물의 구입과 기증, 기탁을 종합적으로 담당했다. 오늘은 주로 서울공예박물관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지은 | 2009년부터 2022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아키비스트로 13년 정도 근무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미술연구센터와 서울관의 디지털 정보실의 개관 전부터 그 시스템을 만들고 구조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재직 당시 기증 작가의 자료 10만 점 정도를 관리했다. 현재는 개인 연구를 위해 기록관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유예동 | 제 커리어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립 및 기관과 함께 시작됐다. 2016년부터 학예연구사로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립의 전반적인 과정에 참여했다. 현재는 자료 수집 담당 업무를 하면서 전시 및 관련 연구 프로그램도 기획한다. 특히, 미술아카이브 개관 전에 건립 초기 단계에서 수집 업무를 많이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홍보 영상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유튜브 채널
Q. 각 소속 기관의 기증을 통한 작품 및 기록물 수집 절차가 궁금하다.
이지은 | 작품과 기록물의 기증 절차가 좀 다르다. 미술관이 작품을 기증받는 절차부터 설명하겠다. 먼저 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밝히면 현장 조사를 나간다.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일차적인 작품의 목록을 만든다. 현장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오는 게 아니라, 먼저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평가위원회를 꾸려 가치 평가를 한다.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가격 평가도 포함되지만, 기증의 경우 가격 평가 절차는 생략된다고 알고 있다. 이후 외부 심사위원들과 내부 학예연구사들이 함께 작품의 수증 여부를 최종 평가한다. 기록물의 기증 절차는 좀 다르다. (미술관 수집 정책과 부합하는 작가, 이론가 등이) 기증 의사를 밝히면 일단 자료를 받아 1차 목록화를 한다. 대략 박스별로 어떤 자료들이 들어 있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목록화와 함께 반입 절차를 거쳐 기증 협약을 한다. 전체 기증 받은 자료에 관한 기술과 정리가 끝나면 이를 아카이브 시스템에 탑재하기 전에 어떤 자료를 선별할지 또는 폐기할지에 대한 자료의 가치 평가가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수장고 부족으로 기증 자료의 수용에 물리적 한계가 커졌다. 그래서 자료의 미술사적 가치 평가를 명확하게 판단해 수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고 관련 기준들도 생겼다. 이를테면, 미술관 소장품 작가의 기록물 수집으로 한정한다든지, 사진이나 필름처럼 유일본을 위주로 수집한다든지 하는 정책을 적용하기도 한다.
유예동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기증 절차는 저희가 직접 접촉해서 기증 의사를 확인하는 경우와 기증 신청이 들어오는 경우 두 가지로 진행이 된다. 먼저 내부의 (기증 자료) 선별위원회를 거쳐 수증심의위원회가 열린다. 수증심의위원은 내부 및 외부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다. 전문가 심의 후 수증 여부가 결정되면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가치 평가를 진행한다. 저희 같은 경우는 자료를 받아서 박스 단위보다는 조금 더 자세하게 진행한다. 검토가 완료되면 대략적인 가목록을 가지고 수증 심의를 한다.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서 수증 심의 절차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간소화되기도 한다. 수증 심의가 완료된 이후 시스템에 등록하기 위해 좀 더 세부적인 메타 정보들을 채우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최종 가치평가위에 갔을 때는 어느 정도 등록할 수준의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진 상태가 된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물 전경
출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립백서. 사진. 김용관
성석 | 국내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가장 선도적으로 관련 법령과 규정을 세워 수집을 시작했고, 이러한 국가 법령에 근거하여 서울시 조례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앞서 말씀해 주신 수집 절차와 서울공예박물관의 수집 절차는 비슷하다. 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밝히면 신청을 받고 수증심의위원회를 거쳐 수증 여부가 결정된다.
현재 미술관의 수집은 작품뿐만 아니라 기록물 수집이 동반된다. 미술관의 소장품과 기록의 필연적인 연결성이 수집 규정에 확실히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인 서울공예박물관도 타 박물관보다 아카이브가 강조된 경향이 있고 아키비스트도 있다. 그런데 서울공예박물관은 전통 공예까지 아우르는 ‘박물관’이다 보니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집 절차와 조금 다른 규정이 적용되는 부분도 있다. 작품과 유물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무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신생 기관으로서 서울공예박물관의 수집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집은 다소 차이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기증 의사를 밝히면 어떤 것을 받을지 내부적으로 판단 후 결정하지만, 개관 전 서울공예박물관은 사실 수집이 선택이라기보다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박물관 입장에서는 건립 초반기에 적극적인 수집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컸고, 기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와 이를 성사시키는 과정, 기증자와의 관계도 중요했다.
Q. 수집을 하다 보면 작품과 기록물의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작품과 기록물이 섞인 채 들어올 때도 있고, 때로는 기록물이 작품에 준하는 가치를 갖기도 하지 않나. 그런 경우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 판단 여부에 따라 절차가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이지은 | 기록물 기증 가운데 작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작품과 기록물 가운데 무엇이 작품이고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작가, 이론가, 평론가 등 기록의 생산 주체가 서로 다른 기록물들을 꼭 미술사적인 가치로만 판단하기보다는 전체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 안에서 이 자료들이 어떠한 맥락과 가치를 가지는지에 따라 이를 작품으로 볼 것인가 또는 기록으로 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증 자료 중에서 작품 또는 기록으로 구분하기가 애매해서 내부적으로 작품 관리와 자료 관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있긴 하다. 그럴 때 아키비스트는 이런 경위들, 즉 소장 이력과 출처를 명확히 기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과정에서 작품과 기록 간의 관계 설정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이를 이용하는 연구자가 이러한 관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즉 작품과 기록이 따로 파편화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유예동앞서 이지은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자료인지, 작품인지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자료로서 또는 작품으로서 볼지를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관된 기준으로 모든 케이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개별 대상을 볼 때 조금 더 정보적인 차원이 강한지, 여러 자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전체로서의 유의미한 가치가 더 있는지 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해당 대상이 생산과정에서 어디에 위치하는 지도 고려해 볼 수 있고, 해당 작가의 기존 작품을 보았을 때, 퍼포먼스나 개념미술의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물리적인 구현과 시각화의 방식이 있다는 점을 참조하여 해당 대상이 어떠한지 고려하기도 한다.
상위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미술관 자료, 박물관 자료라는 카테고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 구분에 따라 작품 이외에 수집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다른 것도 수집할 수 있게끔 열려 있다. 그래서 작품 이외에 자료에 대해서도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도 초기에는 자료의 수집 절차를 어떻게 정의할지 논의가 많았다. 서울시 문화본부 산하에서 미술아카이브의 건립 준비 단계가 거의 진행되었고 서울시 산하에 사적 영역의 기록물을 수집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 이후 미술관으로 (컬렉션이) 이관되고 업무가 분장되는 과정에서, 관련 법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수집 관련) 조례나 법령을 짤 것이냐 하는 부분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최종적으로는 ‘미술관 자료’라는 이름 하에 작품과 자료를 유사한 절차에 의해 수집하는 조례가 개정됐다.
사실 작품과 자료의 기증 절차가 독립적으로 갔으면 좋겠다. 앞서 말씀드린 절차가 자료 기증에 딱 맞는 절차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기록물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는 단계가 있다는 지점인데, 가치 평가를 하는 공신력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와 같은 이슈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절차가 의무 사항일 때 겪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서 (작품 기증 절차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수증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 사실상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다. 대략 어떤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자료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절차가 조금 간소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작품과 자료의 기증 절차가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공예박물관 공예아카이브실 전경
출처. 서울공예박물관 공식 인스타그램
Q. 기증과 기탁의 차이도 궁금하다. 또 기록물 기증이나 기탁이 아니라 매입을 요청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하다.
성석 | 수집을 위해 현장 조사를 나가면 거기서 기증 의사가 대부분 정리가 된다. 기증자가 작품만 기증할지, 아카이브까지 다 기증할지, 아니면 작품은 기증하기 어려우니 디지털 사본만 기증할지, 기증 혹은 기탁을 할지 등 여러 가지 옵션이 나온다. 기증자가 먼저 작품이나 자료를 기탁한 경우 결국 그것이 기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본 기증이든 기탁이든 일단 협의가 되면 추후 기증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기증과 기탁의 차이는 최종 소유권이 어디에 있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기증은 소유권이 기관에, 기탁은 소유권이 기탁자에 있다).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서울공예박물관 기준으로 보면, 수집에 있어서 유물, 작품, 기록물에 구별이나 차별을 두지 않는다. 만약 어떤 공예가 유족이 작품이 없더라도 아카이브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자료가 가치만 있다면 공개 구입 매도 신청 시 박물관은 충분히 구입 의사가 있다. 다만 실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유족이든 생존 작가이든 작품과 아카이브가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예동 |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도 기탁에 있어서는 유사하다. 작품은 주로 공개 공모를 통해 구입을 진행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도적인 방식이 매입이다. 반면에 자료는 기증이 주요한 방식인데 유상 기증처럼 가치 평가를 요하는 사례가 있어서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었다. 기록물은 통상적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례가 많지 않아 가치 평가에 어려움이 있다. 공예박물관처럼 작품이 기증될 때 자료가 같이 기증된 사례도 몇몇 있었다. 자료 수집에 있어 기탁 방식도 있는데 일부러 기탁을 진행했다기보다는 소장자의 의사에 따라 진행한 경우가 있었고, 시일이 지나 결국 자연스레 기증으로 전환되었다. 또는 기록물이 소장 가치가 있는데 서울시립미술관 자체에 해당 작가의 소장품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기록물을 소장하면서 작품도 같이 소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2부 계속)
경기창작캠퍼스에서는 지난 2024년 비입주형 레지던시 교류 프로그램으로 미팅룸과 <미팅앤토크>를 진행하였다.
본 연재는 미팅룸에서 진행한 <미팅앤토크>의 기획 연재 시리즈이다.
필자 지가은은 미팅룸의 아트 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이자 단국대학교 부설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이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 비주얼 컬처 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연구로는 「아카이브 기억의 재현불가능성과 미래적 픽션의 재구성: 김아영과 린제이 시어스 작품 연구」, 『현대미술사연구』 55 (2024)가 있고, 미팅룸 공저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선드리프레스, 2021), 공역서 케일럽 케일리, 『갤러리 사운드』 (미진사, 2023)가 있다.